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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재[mayor of the palace, 宮宰]는 6~8세기 서유럽 왕국의 관리다. 원래 가정감독관(major domus)을 고용했는데,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도 이 제도를 받아들여서 그와 비슷한 궁재(major palatii)를 임명해 일을 맡겼다. 궁재는 점점 더 많은 임무를 맡고 권력이 커져 궁정관리들을 관할할 권한을 지녔다.

원래는 왕실 관리의 지위였으나 메로빙거 왕조 때는 섭정 또는 부왕의 지위까지 올랐다. 메로빙 가(家)의 세력이 잠시 부흥하였으나 점차로 궁재(宮宰)가 프랑크 왕국의 세력을 장악하였고 무능한 왕들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제정 로마 때 대지주들은 산재해 있던 광대한 토지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가정감독관(major domus)을 고용했는데,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도 이 제도를 받아들여서 그와 비슷한 궁재(major palatii)를 임명해 일을 맡겼다. 궁재는 점점 더 많은 임무를 맡고 권력이 커져 궁정관리들을 관할할 권한을 얻게 되었고 백작이나 공작 임명에 관해 왕에게 조언도 했다. 왕의 측근과 왕의 피후견인들을 보호했으며 결국 국왕군대 지휘권까지도 갖게 되었다. 궁재가 나이 어린 통치자들의 후견인으로서 정부통제권을 얻게 된 것은 6세기말부터 계속해서 왕들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은 왕이 성년(成年)이 된 뒤에도 통제권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토지소유귀족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여 그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나중에 몇몇 궁재들은 이들을 엄하게 다룰 만큼 강력해졌다.

7세기 중반부터 대체로 카롤링거 가문 출신의 인물들이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재자리를 차지했고 687년 피핀 2세(헤르스탈의 피핀)는 테르트리에서 네우스트리아 군대를 물리쳐 3개의 프랑크 왕국인 아우스트라시아·네우스트리아·부르군트를 통일해 사실상 손에 넣었다. 그의 손자인 단신왕(短身王) 피핀 3세는 751년 메로빙거 왕조 왕인 힐데리히 3세를 제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

이때 로마교회의 대주교(교황) 자카리아스가 페핀이란 권력자(궁재-宰相)가 프랑코 왕국의 합법적인 왕을 추방하고 권좌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푸아티에에서 코르도바(스페인 남부 지역)의 총독 아브드 알 라흐만이 지휘하는 이슬람 군대와 프랑크 왕국의 궁재(宮宰) 카를 마르텔이 이끄는 기독교 군대가 천하패권을 놓고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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