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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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
본명 윤교중
출생 1888년 11월 7일
충청남도 공주군
사망 1954년 9월 29일
국적 대한민국의 국기
분야 연극,영화,소설
교육 도쿄 고등상업학교 졸업

윤백남(尹白南, 1888년 11월 7일 ~ 1954년 9월 29일)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예술인이다. 배우, 극작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감독, 연극 제작자, 영화 제작자 등을 다양한 직업을 겸했다. 본명은 윤교중(尹敎重)이다.

생애[]

충청남도 공주군 출신으로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다. 한성부로 올라와 신학문을 익힌 뒤 1904년일본으로 건너갔다. 대한제국 관비 유학생으로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학비 지원이 끊겨 도쿄 고등상업학교로 옮겨 졸업했다.

귀국 후 매일신보 기자가 되어 문필 생활을 시작했다. 신파극 극단인 문수성을 창단하여 번안 신파극을 공연하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잡지사 반도문예사를 설립하여 월간 잡지 《예원》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 《동아일보》가 창간되자 입사하였고, 매일신보에 단편소설 〈몽금〉을 발표하였다. 연극론과 희곡을 발표하고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촬영했다. 윤백남은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으며, 민중극단 배우였던 이월화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영화 《운영전》, 《심청전》 등을 연이어 발표하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자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30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대도전》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윤백남은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30년대에는 야담 운동에 뛰어들어 많은 야담 작품을 발표했고, 1937년만주로 이주해 역사 소설을 썼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귀국하여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53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을 맡고 대한민국예술원 초대 회원을 지냈다. 연극, 영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 문화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참고자료[]

  • 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2006년 12월 15일).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서울: 소도, 215~217쪽. ISBN 9788990626264.

틀:1993년-이 달의 문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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